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4.19 혁명 (문단 편집) === 4월 26일, 승리의 화요일 === [youtube(gcAnElJECf4)] > "미국으로 망명하라는 건가?" > "그렇습니다. 그것만이 오직 유일한 길입니다." >---- >이승만 대통령과 시민 대표 5명과의 면담 中 > 장안에 모이신 데모시민 여러분, 우리는 [[이제|인제]] 늦은 감이 있으나, 민주주의를, (음,) 돌아온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군인 탱크에 타신 분은 내려주시고, 지금 농성을 하신 분은 일어나셔가지고 제각기, 제각기 해산 해주셨으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 >시민 대표의 해산 선언 상황은 이승만에게 명백히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26일 아침 [[김정렬(1917)|김정렬]] 국방부장관이 강경하게 이 대통령에게 하야를 진언했고[* 이승만에게 가장 충격을 주었다. 이는 군대가 이승만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렬은 정확히 20년 후인 1980년, 친구인 [[최규하]]에게도 하야를 진언해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부인 [[프란체스카 도너|프란체스카]]도 귀에 대고 결심을 재촉했으며 4월 25일 외무부장관으로 입각한 [[허정]]도 하야를 권유했다. 김정렬 회고록에 따르면 이미 이때 이승만은 결국 하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이승만은 박찬일 비서관을 불러 성명서를 쓸 것을 지시했다. 초안에는 대통령 하야, 내각책임제, 재선거 등이 적혀있었지만 이승만은 그렇게 쓰면 안된다고 새로 쓰게 했다. 송요찬의 건의로 이기붕의 공직 사퇴 내용도 첨가되었다. 두 번째로 쓰인 성명서가 밑에 있는 성명서다. 그때 송요찬 계엄사령관이 시민대표, [[설송웅]] 등 학생대표 5명과 이승만 대통령의 면담을 주선했다. 고려대 정치학과 유일나 등이 경무대 후원에서 이승만과 면담했다. 유일나가 "각하께서 하야하시는 길만이 나라를 구하는 길입니다"라고 직언했고 이승만이 "뭘 하라고?"라고 알아듣지 못하자 옆에서 곽영주가 "step down"이라고 속삭였다. 이승만은 "날더러 저 하와이나 외국에 가서 살란 말인가?"라고 물었고 유일나는 "국민이 원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때 미국 대사 맥카나기가 도착했다. 이승만은 대사를 기다리게 한 다음에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유일나는 이집트 [[나세르]]의 예를 들며 북한과 대치 중이니만큼 2년간 군정을 한 다음에 민정으로 이양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허정이 옆에서 반대의 뜻을 밝혔고 이승만은 그게 송요찬의 지시로 한 말인 줄 알고 한국과 이집트는 상황이 다르다고 반대했다. 결국 이승만은 시민 대표와의 면담을 받아들였다. 10시 20분경 드디어 이승만이 시민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사임할 것을 발표했다. 비슷한 시간인 9시 45분경 파고다공원에 몰려든 데모 군중이 이승만 동상의 목에 철사줄을 걸어 쓰러뜨렸다. 현재는 그 자리에 [[김구|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10시 40분에 이승만은 맥카나기 대사와 면담했는데 미국의 사퇴 압박을 전하려던 대사는 사퇴 성명서를 듣고 성명 지지 의사를 전달했다. [youtube(z3ikl3QSi24)] >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들어와서 우리 여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내왔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 나는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만이 있다면 민의를 따라서 하고저 한 것이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 보고를 들으면 사랑하는 우리 청소년 학도들을 위시하여 우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이 내게 몇 가지 결심을 요구하고 있다하니 여기에 대해서 내가 아래 말하는 바를 뜻대로 할 것이며 한 가지 내가 부탁하고자 하는 바는 이북에서 우리를 침략하고 공산군이 호시탐탐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말도록 힘써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 >첫째는,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직을 사임할 것'''''이며 > >둘째는, [[3.15 부정선거|지난번 정부통령 선거]]를 많은 부정이 있었다고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고 > >셋째는, 선거로 인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애게 위해서 이미 '''이기붕 의장을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가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 >넷째는, 내가 이미 합의를 준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하면 '''내각 책임제 개헌'''을 할 것이다. > >이상은 이번 사태를 당해서 내가 굳게 결심하는 바이니 나의 이 뜻을 뭇 사랑하는 모든 동포들이 양해해 주어서 이제부터는 다 각각 자기들의 맡은 바를 해 나가며 다시 일손을 회복시키도록 모든 사람들이 다 힘써주기를 내가 사랑하는 남녀 애국 동포들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 >-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 1960. 4. 26 짐작하겠지만 "국민이 원한다면" 이라는 표현이 논란의 여지가 있었는데 이에 수석국무위원 허정은 기자들에게 "이는 단지 문구상 표현에 불과하고 사실상 하야하는 것"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시민들은 방송을 듣고 경무대 앞에서 만세를 부르며 승리를 환호하였다. 시민들은 새로이 "'''질서를 지킵시다'''" 플래카드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며 사회를 안정시키고자 하였으며 길거리를 자발적으로 청소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folding ※ 4월 26일 시위 사망자 명단 : 보기 / 접기 ||<-4> ''4월 26일 시위 사망자 및 상이후사망자'' || || 강명석 || 김경이 || 김두호 || 김선길 || || 김영호 || 박완식 || 박춘봉 || 손흥구 || || 심점구 || 안정수 || 윤석헌 || 이강섭 || || 이연하 || 이재섬 || 이판갑 || 이한수 || || 임기택 || 장영옥 || 정태성 || 정태훈 || || 조진구 || 최장성 || 양대춘 || 함장호 || ||<-2> 안창원 ||<-2> 송시환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